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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기록화와 작가의 상상력_이수연

현대판 기록화와 작가의 상상력

 

  매머드와 들소, 사슴의 사냥 장면이 생생히 그려진 구석기 시대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회화는 당대의 사건을 기록하는 기록화로서 기능해 왔다. 기록화로서 회화는 작가의 주관적 생각과 느낌으로부터 거리를 둔 객관성을 조건으로 한다. 그러나 기록적 회화의 객관적 성격은 사진과 비디오의 등장으로 힘을 잃고 현대의 회화는 작가가 제거된 근본적인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최현석은 동시대에 사회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대상으로 작가가 보고 느낀 감성을 회화를 통해 표현하는 작가이다. 화면 속에서 작가가 기록한 사건은 작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통해 필터링 되고, 작가가 화면에 기록한 내용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하나의 파편이 된다.  특히 작가는 조선시대 기록화의 양식을 차용하여 자신의 사유를 기술한다. 조선시대 회화에서 기록화는 여러 명의 솜씨 좋은 화원이 상세한 세부 묘사를 통해 왕가의 중요한 행사를 조명하는 목적으로 기능해 왔다. 기록화는 양식화되었지만 읽기 쉬운 구도와 전달력이라는 힘을 가지고 있다. 18세기에 그려진 정조 대왕의 <능행반차도>의 양식을 딴 <무자년 광화문 행렬도>는 대통령의 행렬과 그 주변의 상황들을 그린 작업이다. 왕을 모시는 어가 대신 검은색 승용차가 들어선 행렬은 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엄숙한 권력의 모습을 제시 한다. 행렬을 환영하는 인파 속에 디테일하게 그려진 소매치기와 음식을 시켜먹는 사람들의 모습은 작가의 작업이 일상적 대중의 현실에 단단히 기반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한다. 숨겨진 작가의 의도는 거꾸로 가는 차선과 얼굴이 없는 대통령을 통해 희미하게 읽혀지지만, 작가가 선택한 논란적인 주제만큼 명시적이지는 않다. 일련의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은 신문 기사들을 통해 기록되듯이 명확하지만, 그것이 작가 개인의 삶과 구체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은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작가의 개인적 상상과 감성적 아이디어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진실의 한 파편으로 읽혀지기 위해서는 엄격한 기록화의 양식뿐만 아니라 어느 장르보다 명쾌하게 드러나는 기록화의 의도와 그 내용 또한 함께 필요할 것이다. 

 

이 수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