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석 작가와의 대화
김 유 연
오늘날 자본주의 금융이 거대한 글로벌 카지노화되는 현상으로 인해 가난, 질병, 빈부격차 심화에 따른 사회적 혼란 뿐만 아니라 도덕 혹은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무지 혹은 무감각해지거나, 습관적인 일로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천천히 그리고 비밀스럽게 침식되어가는데, 과연 예술은 이러한 삶의 가치를 제자리로 되돌릴 수 있고 세계를 변화 시킬 수 있는가.
최근 세월호 외화내빈도(世越號 外華內貧圖)를 포함한 최현석의 독특한 기록화 작품들은 기존의 심화된 전반적인 문제들을 수면에 드러내기 위해, 다각적 시선과 사실적 연출로서 당시 사건을 동시 다발적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김유연 이하 <김>
최현석 작품은 조선 궁중 기록화와 중국 풍속화, 인도 세밀화를 연상시킨다. 작가 개인 혹은 역사적 기록성을지닌 독특한 구도법과 사건의 동시성, 그리고 정치적이고 역설적이기도 하다. 기록화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하다.
최현석 이하 <최>
2008~9년 광화문 광장에서 MB산성을 마주하며 촛불시위에 동참했을 무렵, 학교에서 내준 과제를 작성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을 견학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접한 국보급 궁중기록화들을 보고 감응하게 된 계기가 크게 작용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 당시 접한 기록화들은 감응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껴지게 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동안 왜 현대미술로서 기록화가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나름 이유를 찾게 되었고, 안타까운 마음에 본래 기록화의 의미를 되찾고자 했던 것 같다.
<김> 고전 기록화는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그 시대의 정치 사회적 관심에 따른 풍자적 의미를 담는다. 사실적인 내용이라 하지만 의도적인 매개체로 작용될 수 있다. 전쟁기록화 역시 권력적 권위의식과 의도적으로 정당화 하려는 요소가 불가피하다. 본인은 이러한 함정으로부터 벗어나, 어떤 방식으로 작품으로 표현하게 되었는지 설명해줄 수 있는가
<최>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기록화들은 철저히 주류인 권력자 입장에서 말해온 사실들이었다. 본인은 비주류 즉, 일반인의 시선에서 현실을 바라보고자 노력하였고 그러면서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같은 사건이 다르게보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반대로 비주류의 입장만을 말하고 있는기록화를 표현한다는 것 또한, 앞서서 수없이 주류 입장에서 전해온 고전 기록화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즉, 주류든 비주류든 지극히 개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결국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욕구충족이라는 이득을 취하려 하는 행위로서 동등하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도출했기 때문이다. 쟁취하려는 욕구는 나와 반대된 입장에겐 또 다른 폭력으로 다가 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록화의 역할에 대해 곰곰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본인이 말하고 싶은 의견을 제시하는 것보단, 무언가 불편함을 목격한 현상에 대해사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화폭으로 옮겨놓는다면 기록화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한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작가가 왜 이 장면을 기록화로 표현하고자 하였는지에 대한 물음은 관객의 몫으로, 그 너머 작가는 왜 현실을 불편하게 바라보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 유추해 내며 다시 돌아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 고전 기록화에서 특히, 16 세기 17세기의 인도 무굴화나 중국 국보 장택단의 청명상하도는 한 폭의 그림에서 수백명의 인물들을 묘사함에 있어 역사적 사건이나 세속사에서 공간구성이나 인물표현이 현실적으로 묘사 되어진다. 이와반면, 최작가의 기록화는 수많은 얼굴들의 형체를 비워, 무명인 혹은 동일인물로 보여진다. 여기서, 이들의 모습은 현 사회의 고립성과 무명인을 의미하는 것인지 혹은 무모한 집단 참여를 의미하는지 궁금하다.
<최> 표정이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리지 않아도 되겠다는 스스로의 판단에서였다. 기록화에 표현된 동작과 행동 그리고 자리 잡고 있는 위치나 옷의 색깔 등 포괄적인 모습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각자 자신들이 살아온 삶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표정을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 내어 바라볼 것이란 확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굳이 방점으로써 표정을 직접 결론지어 확정시키는 것보단 오히려 여지를 남겨두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표현방식에 있어서는 다시각적 시점, 다원적 시점, 이동시점을 동반하여 표현하려 하였으며, 동양화에서 주로 쓰인 조감법, 부감법 그리고 이시동도법 등 가리지 않고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나름 화폭 속에 자유롭게 재구성하여 관조하듯 하나하나 기록하듯이 옮겨내어 표현하고자 하였다.
<김> 최근 작품, 종가불멸도(宗家不滅圖)는 가족의 전통과 제사라는 풍속의 관습에 대한 의무 등, 종가를 이어갈 대대장손인 작가로서, 개인적 이야기와 관련 있다고 하였다. 서울에서 투영된 작가의 모습 그리고 고향에서 장손으로 살아가는 모습, 본인은 이러한 대조적인 상황을 어떻게 예술로 발전시켰는가
<최> 종가집은 현재 제가 소속되어있는 혈맹으로 구성되어있는 유교적 가족집단이다. 제 작년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나의 위치가 조금 달라지면서 이전과 달리 가족 구성원들이 저에게 원하는 것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종가집 종손이라는 위치와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유교라는 사상 시스템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되었다. 현재 나의 딜레마는 종가집이라는 유교적 시스템에 의해 친지 가족들과 부모님에겐 순종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한다. 안락한 쉼터로서의 집이 아닌, 사회에서 마주한 제도와 같은 불편한 장소일 뿐이다. 타지역에서의 아티스트의 삶이 어떻게 보면 나에게는 제도적 시스템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유일한 숨통과도 같은 것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김> 최현석 작품에는 시대적인 풍자성, 사회적 일치성에 비판적 자세를 취하고 대중과 법 사이의 분리성에 대해 복합적이고 대조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세월호 외화내빈도(世越號 外華內貧圖), 장례호상도(葬禮好喪圖) 의 작품 제목에서 유추 할 수 있듯이, 대조적 의미와 표현의 다양성을 감지 할 수 있다. 세월호 비극 사건들은 권력의 메카니즘으로 인해 아이러니컬하게 재현되거나, 죽음의 슬픔을 가장한 향연의 과정을 그려낸다. 관습이나 도덕, 사회계급, 권력에 대한 이중잣대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본인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의 작품을 보며, 예술은 사회적 가치와 변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
<최> 나의 기록화 표현방식에 있어서는 고정된 하나의 시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자 하는 현실이 머릿속에 필터링 되면서, 재구성된 기억의 조합을 통하여 화폭으로 대상이 하나하나 기록되듯이 옮겨지는 것이다. 그림에는 고전에서 주로 쓰인 다시각적 시점, 다원적 시점, 이동시점을 동반하고 있으며, 조감법과 부감법 그리고 이시동도법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완벽하게 분석됨과 동시에 나오게 되는 방식으로서 화폭에서 자유롭게 재구성 되어 표현되어 지는 것이다. 제 그림이 고전적 형식을 취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기록화를 보고 느낀 감응으로 과거와 현재 인간이 취하려 하는 본능인 권력적 권위의식 욕구가 묻어나는 환경적 요인이 시간성과 맞물려지면서 절대 변하지 않은 동일함으로 느껴졌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오늘날 현재를 살고 있는 나의 눈에는 고전의 세계인 즉, 고전 속 표현되어지는 형식들이 이상적인 세계로서 현실보다 더 명확한 답이 구현 될 수 있는 시공간의 세계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인식한 나는 지금 현재의 사람이고 결국 현재의 내가 과거인 고전을 재해석 하여 보게 된 것이므로, 결국 고전은 고전이면서 고전이 아닌 오늘날의 문제를 마주할 수 있는 현실로서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실과 마주하는 우리의 삶 속에서 정치와 사회는 서로 분리 될 수 없는 관계라 생각한다. 그러한 삶 속에서 표출되는 예술을 정치와 사회를 따로 배척하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그래서 기록화 또한 정치와 사회적 요소들이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녹아 어우러져 표현되어 지는 것이라 본다. 본인의 작업은 현실을 살아가면서 마주한 사건 속 의문이나 불편함에 대해 아는 것, 알게 된 것, 본 것, 느낀 것에 대한 감정을 관조하여 대상을 표현한다. 여기서 바라본 관조란 개인의 욕망을 표출하려는 생각의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현재 현실에서 마주하고있는 불편한 사건 그 자체를 조망하여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가식 없이 현상을 탐구하고 바라보려 하는 자세이다. 즉, 이번 문제에 제시된 표현들은 관객들이 제 작업을 보고 그 너머의 문제를 인식하고 판단하게 된 감상적 표현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그 무엇을 보여주겠다고 나서는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흡수해서 거꾸로 돌려 내쏘는 반성의 원리 그 자체가 예술의 존재라 생각한다.
<김> 작가론에서 본인의 작품은 "기록화를 전복하는 기록화"라고 했다. 전복이라는 단어는 고전 기록화를 해체하는 것 외 또 다른 사회적 패러디로서의 의미가 있다면 ?
<최> 제시한 전복의 의미는 기록화가 결과적으로 얻으려는 답의 의도성과 지향하고 바라보는 시간적 방향에 대한 전환을 말하고자 함이었다. 고전기록화의 목적은 당시의 업적 및 명성을 이룩한 역사적인 날을 먼 훗날 까지도 회상하며 바라보게 한다. 반면에 제가 전복 하려는 기록화의 목적은 현재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현실을 관조하여 문제점에 대한 물음을 던짐으로써 지금 당장 불편함을 해소 할 순 없겠지만 반성을 통해 보다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하는 것이다. 즉 얻고자 하는 그리고 지향하는 길이 고전 기록화와는 반대로 행해지는 것이다.
<김> 마지막으로 현재 경기도 OCI미술관 창작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걸로 알고 있다. 현 거주지에서 또 다른 영감 혹은 영향, 작품의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새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면 어떤 방향인가
<최> 작업 공간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문제점을 미리 걱정할 때가 있다. 막상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보면 결국 알게 되는 것은 이전에 있었던 거주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즉, 나에게 있어 현실과 마주한 그 어디에도 정신적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실질적 안전 지대가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적 괴로움을 극복하려는 의지에 있어서 혼자 작업할 때보다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작가들과 서로 부대끼며 생각의 깊이를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확실히 작업하고 고민하는 데에 있어 스튜디오 생활은 좋은 환경이란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영감이나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재 ‘관습의 딜레마’ 란 타이틀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아마도 결과물은 앞으로 있을 개인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리라 본다.
Talk with Choi Hyun-seok
By Yu Yeon Kim
Parallel with the style of high-risk casino capitalism that in recent years imperiled global financial markets, social values have trended towards a marked callousness with regard to social inequalities and the consequent deprivation and lowered standards of health of sectors of the population. Moreover, this disinterest in social problems has become the norm – and this allows them to further escalate.
What role can art possibly have in illuminating these issues and becoming a means of change through which the value and consideration of human life can be recovered? In “Saewol-ho - Within Poor, Outside Glory" one of Choi Hyun-seok’s unique documentary paintings, the artist explores preexisting, engrained social problems from multiple perspectives as a process of exposure. He poses questions, enabling viewers to consider afresh events pertaining to such issues.
Yu Yeon Kim (hereinafter referred to as Kim):
Your work alludes to the style of the royal court documentary paintings of the Joseon dynasty, Chinese folk paintings and even Indian miniature paintings. The distinctive composition of your work with its reference to individual and historical records of events, is engrossing. Your work is both political and paradoxical – often depicting simultaneous events of contradictory realities. When and why did you decide to commence this series of documentary paintings ?
Choi Hyun-seok (hereinafter referred to as Choi):
When I joined the candlelight rally at Gwanghwamun Square between 2008 and 2009, I faced the so-called “Myung-bak Castle”. It was the name given to the system of barricades the police erected to deter protesters demonstrating against President Lee Myung-bak. At that time, I visited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to do research. I think my work was profoundly inspired by the court documentary paintings on par with a national treasure I saw there. The paintings I saw made me feel both inspiration and discomfort. In hindsight, I understood why documentary paintings have remained away from the limelight of contemporary art and was thus interested in developing their potential as a critical expression of contemporary life.
Kim: A classical court documentary painting conveys a message or portrays a satire on political and social issues of the time. Even though it addresses a record of actual events, it was often used to embellish and glorify the power of court and state. War documentary paintings inevitably involve some elements of authority and intentional justification. Could you explain how you avoided this trap and what methods you adopted to produce your work?
Choi: The documentary paintings we have experienced thus far reflect the perspectives of men of power. I made an effort to see realities from the viewpoint of the general public and found myself wondering if a single event could be seen differently depending on the perspective from which it was viewed. Although I realized this fact, I made the judgment that documentary paintings which reflect only the perspective of non-mainstream people are nothing short of classical documentary paintings depicting events from the perspective of mainstream people. That is why I concluded that when viewing the world from an extremely individual perspective, be it the mainstream or the non-mainstream, raising one's voice is equivalent to gaining something. Since my desire to gain something may be considered an act of violence towards those with opposing beliefs I deliberated on the role my documentary paintings would play. I decided that what I needed to do was to depict the contractions and phenomena which I witnessed, rather than presenting my own opinion. My hope is that viewers will ask what my intentions were in depicting a certain scene in my paintings and ask why I saw reality from such an uneasy standpoint. I hope that my documentary paintings may serve as a vehicle for others to consider their own lives in relation to society.
Kim: In classical court paintings – such as the Chinese national treasure, "Riverside Scene at Qingming Festival (1085-1145)" by Zhang Zeduan – or the paintings from the Persianate Mughal empire of the 16th and 17th centuries, much attention is given to the individual expression of faces although the works may be depicting multitudes of people. In your work, however, the faces are blank and the figures form a pattern of movement and juxtaposed colour, as if they are participating in a collective event. Is it the alienation and anonymity of contemporary urban society that you indicate in your work – the unthinking participation of the masses in the daily routine of everyday life?
Choi: I decided that expressionless faces were appropriate as I felt confident that viewers could envision their demeanor through their physical stance and activity, garment colors, and other characteristics. I would like to leave room for the viewer’s imagination rather than predetermining their appearance. The methods of expression I have indiscriminately adopted include not only multi-pronged, plural, and moving points of view but also points of view predominantly used in Oriental paintings such as a bird’s eye view and depicting different time frames in one artwork. I freely reconstructed the objects I wanted to paint as if contemplating and documenting them one by one.
Kim: Your painting, “The Never-Ending Head of Family”, refers to the eldest son's obligation to continue the family traditions and the ritual of homage to ones ancestors as well as dealing with matters of estate and family relationships. How do you see this contrast between a city like Seoul, with its international perspective – and those who dwell in the countryside where ancient Korean traditions and culture still persist?
Choi: A head family is a Confucian family group formed by blood ties. Since my grandfather passed away last year, my position in the family has gradually changed and other family members have begun to request more from me. This situation has led me to seriously question my position as the eldest son in a head family and the ideological system of Confucianism as a whole. My dilemma is that I should obey my parents and my other relatives due to this Confucian belief system. However, I feel as though my home is not a comfortable place of rest but an uncomfortable place with a strict hierarchy. I believe that itis necessary for my artistic development to escape the binding of this family tradition by making my life in more unfamiliar environs.
Kim: There are many contradictions in your work and it appears to be at times satirical, conveying a critical attitude towards social conformity and the division between the common people and their rulers. Also, your works. “Saewol-ho - Within Poor, Outside Glory" and "Banquet Funeral" have titles that refer to contradictory perceptions and exploitation of tragic events like the sinking of the MV Sewol. The unraveling of the former illustrated the mechanisms of power and political gamesmanship in Korean society which, nevertheless, avoided a full examination and condemnation of the bureaucratic corruption that led to the disaster. “Banquet Funeral” shows people celebrating a feast instead of showing the solemnity and respect that is normal at a traditional Korean funeral. To what extent is your work informed by a critical view of Korean society and politics and do you think that art has the power to influence social values and be an agent of social change?
Choi: I do not rely on only one fixed point of view in creating my documentary paintings. Filtering out the realities I want to portray in my mind, I transfer objects to the canvas one by one as if documenting them through a combination of reconstructed memories. My work involves the multipronged, plural, and moving points of view mainly found in classical paintings as well as a bird’s eye point of view and depicting different time frames in one painting. There are two underlying reasons why my paintings take a classical form. The first one is that I feel as though humanity’s instinctive desire for power and authority sought after by humans both in the past and the present has never changed. The second reason is that I feel as though the classical art form could be the world of space-time where more acute commentary can be made rather than idealizing reality. As I am living in the present but interpreting classical form, I see classical art as a means of unlocking the problems of today. Also, I think of politics as an inseparable element of our lives in which we face reality. Art deriving from real life does not exclude politics and society. That’s why documentary paintings are naturally imbued with political and social elements. My work is a representation of the questions I have had and the unease I have felt while living in reality, contemplating what I know, see, and sense. Contemplation is a means to explore phenomena and consider the disturbing events we face in reality - candidly and without pretense, refraining from coloring it with personal prejudices and values. I hope to make viewers perceive and judge the problems my works raise. I regard art as a means of self-reflection by which it, like a mirror, absorbs something but returns it in reverse
Kim: The title of your artistic statement is : "Documentary painting subversion Documentarypainting". I assume this contains a double meaning - eg; that your painting is a “subversion” of traditional painting and that it is essentially subversive as a social parody?
Choi: Overturn here means a shift in the intentionality of answers documentary painting tries to gain and its temporal orientation. Classical documentary painting had viewers recollect and view accomplishments and reputations made in the past. In contrast, the objective of my documentary painting is to wish for a better future through reflection, meditating on inconvenient realities and questioning problems. What I want to gain and what I seek through my documentary painting is totally different from the motivations of the classical court artists.
Kim: You are currently and artist-in-residence at the OCI artists residency in Korea. Has the different location and environment affected your work? How do you see your future development and direction?
Choi: Whenever I move to a new work space, I am concerned about how I should adapt to a new environment. While adapting to a new environment, I realize that the new place is not really different from my previous studio. I believe artist-in residence programs provide a creative and critical environment through which artists can dialogue and share ideas with each other. Undoubtedly, such an experience inspires and encourages one's work. I am preparing a new exhibition entitled, "Dilemma of Custom". You may see the results of this work at the upcoming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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