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즘의 역전
이 은 주
한국 현대미술사의 흐름 안에서 동양화는 선대의 계보를 수용하던 벗어나던 간에 전통이라는 강고한 터전과의 역학관계를 담보한다. 1960년대 서세옥을 중심으로 한 묵림회의 활동, 1980년대 송수남을 중심으로 한 수묵화 운동, 2002년 《동풍(東風)》전을 중심으로 부각된 유근택과 같은 현대 동양화가들의 실험들은 모두 전통과 현대회화 간의 함수를 능동적으로 풀어냈던 시도들이었다. 서양화법 중심의 근대화 과정에서 탄생한 특수한 용어만큼이나 독특한 동양화의 위치는 현대미술로서의 한계선을 내포하면서도 글로컬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2000년대 후반 등장한 신세대 동양화가들은 동양화의 특수한 위치를 역으로 활용하여 정통적 동양화 기법을 대중적 소비문화, 현실적인 사진 자료 등 전혀 전통적이지 않은 요소들과 접목시키는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이들은 그룹운동에 천착하진 않았지만 전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세대문화를 형성하면서, 이른바 ‘젊은 동양화를 현대미술의 맥락 안에 효과적으로 각인시켰다. 이러한 작업들은 동양화 기법을 현대적 소재와 단순 접목시킴으로써 발생되는 소재주의의 한계를 지니기도 하지만, 동양화의 기법적인 특수함을 현대 회화의 개성적 방법론으로 인식시키면서 전례 없는 범주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회화사에 유의미한 궤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최현석의 작업은 2000년대 후반 이후 등장한 신세대 동양화의 계보 속에서 언급될 수 있으면서도, 전통적인 동양화에 대한 비판적 해석에 있어서 이들과 또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최근작들에서 엄격하게 전통을 따르는 동양화 기법으로 사군자를 재현하는데, 이러한 전통적 기법의 수용은 매우 의도적인 전략에 의한 것이다. 그의 화법은 중국 청나라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회화 교본인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을 철저히 따른다. 이 교본은 명나라의 이유방(李流芳)이 옛 명화를 모아 만들었던《산수화보(山水畵譜)》를 17세기말 증보편집한 것에서 시작되어 18세기 중엽 청나라에서 완집이 간행된 이후 3백여 년에 거쳐 개정된 책이며,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 동양화 교육의 중요한 교본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동양화의 아카데미즘으로서 상징성을 지닌다. 최현석은 의도적으로 개인적인 해석을 배제한 채, 그가 대학 시절부터 이 교본에 의해 습득해왔던 형식에 따라 매난국죽(梅蘭菊竹)을 그려낸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먹 대신 시온안료라는 특수한 재료를 쓴다는 것이다. 그는 시온안료를 먹을 만드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아교와 섞어서 사용하는데, 이 안료는 적정 온도에 따라 색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최현석은 시온안료로 그린 사군자 작품 옆에 헤어드라이어를 설치하여 관람자가 직접 작품에 열을 가해서 온도에 따른 작품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열에 반응하는 안료의 특수한 성질로 인해, 관객이 드라이어를 켜서 열을 가하는 순간 사군자의 형태는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최현석은 관객의 참여에 의해 지워져가는 이러한 그림에 <신기루-매난국죽>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교본을 따르는 동양화의 아카데미즘이 신기루 같은 허상이라는 관점을 제기하고 있다. 직접 작품에 열을 가하자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이미지를 보면서 느꼈던 쾌감은 생각보다 컸다. 작품에 대한 관객의 물리적인 접촉을 유도하는 이러한 방식은 화이트큐브 내의 엄격한 작품 보존체계에 대한 반격의 의미를 지님으로써 제도비판 예술의 위상을 획득한다. 더욱이 헤어드라이어라는 일상적 로우테크(Low-tech) 매체를 이용한 관객과의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은 하이테크(High-tech) 매체와 달리 관객으로 하여금 기계적 매카니즘에 압도되지 않은 채 작품에 개입하게 만듦으로써, 작품 형성의 주체로서의 의식을 보다 강하게 경험시킨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최현석은 동양화의 오랜 역사를 통해 계승되어 온 사군자의 위상을 역할용하여, 사군자로 상징되는 예술계의 관습과 엘리트주의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최현석의 반제도적 태도는 2017년 OCI 미술관에서의 개인전 ‘관습의 딜레마’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그는 궁중기록화와 같은 전통적 방식으로 <직장회식계회도>(2016)를 그렸는데,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는 “즐겁지 않는 즐거움”을 위한 회식 자리를 만들어내는 현대 한국사회의 풍속도이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인물들의 개별성을 배제하고 행사 자체를 재현하는 전통적 기록화의 방식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객관적 현실을 담아내는 효과적인 방법론이 되었다. 서울에 있는 온갖 종교의 성전들을 그린 <종교비치도>(2017)에서는 도처에 깔려있는 교회나 절들을 정면부감의 시점으로 그려내어 종교적 공간들의 일정한 유형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면서,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성전들마저도 현대사회 속의 관습적 장소들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는 관점을 제기한다. 내용을 해독하지 못한상태에서는 아카데미즘을 충실히 답습한 동양화로 보일 뿐인 이러한 작품들은 내용을 알게 되었을 때 더 큰 반전의 묘미를 느끼게 된다.
앞 서 언급한 최현석의 근작인 <신기루-매난국죽>은 그가 견지해왔던 제도비판적 태도를 예술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진화시킨 결과라 할 수 있다. 가장 아카데믹한 방식의 동양화법을 활용하여 아카데미즘을 공격하는 그의 태도는 고답적인 동양화론에 대한 자조적 힐난인 동시에, 대담한 발상 전환을 통해서 현대 동양화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는 청주시립미술관 전시를 위해 교본을 따른 전형적인 난치기 방식으로 완성한 난들을 마치 잡초처럼 수없이 반복해서 배치하려고 계획 중이다. 사군자 옆에 놓여진 헤어드라이어는 유형화된 난들을 반복 재현하는 작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단서가 될 것이다. 미술관에서 관습적으로 시도되는 작품에 대한 선행적 가이드는 오히려 작품의 본래적 의미를 찾는데 방해요인이 될 것이며, 관객의 능동적 참여만이 작품을 온전하게 완성시킬 것이다.
최현석의 작품에서 신기루의 허상을 찾고 또 지우는 주체는 결국 관객이다. 이처럼 그가 시도하는 제도비판의 궁극적 결과가 관객 친화를 향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헤어드라이어를 들고 작품에 과감히 다가가서 열을 가하도록 관객을 유도하는 것은 작품에 손대지 못하게 하는 화이트큐브 전시공간의 제도적 위상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현대 동양화의 영역에서 아직 본격적으로 시도되지 않았던 관객경험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관객에 의해 지워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게 될 매난국죽의 이미지는 관객의 경험에 의해서 비로소 아우라를 얻게 되는 ‘관계미학’을 형성하면서, 결코 사라지지 않고 끝없이 부활하는 예술이라는 신기루에 대한 메타포로 작용할 것이다. 이를 통해 최현석이 그린 활기 없는 교본식의 그림은 그림에 대한 새로운 사고(思考)의 일환으로서의 위상을 얻고, 박제된 아카데미즘이 아닌 현대미술로서의 생명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